본문 바로가기

리뷰에 빠지다/책에 빠지다

역사e, 그 세번째 이야기_호랑이 나라

 


세상을 깨우는 시대의 기록

"나라의 근본은 무릇 백성이다." - 삼봉 정도전(조선의 정치가)

 

■ 친근하면서 무섭기도 한 호랑이


 호랑이는 우리 역사와 언제나 함께했다. 단군신화에는 곰이 호랑이를 제치고 사람이 된 것으로 나오지만, 우리 역사에 자주 등장한 동물은 곰보다 호랑이였다. 

 우리 민족은 호랑이를 좋아했다. 할머니가 들려주던 옛날이야기들은 대부분 '옛날 옛적에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에'로 시작한다. 육당 최남선은 "중국의 용, 인도의 코끼리, 이집트의 사자, 로마의 이리처럼 조선에서 신성한 동물로 첫째가는 것이 호랑이"라고 말하면서, 조선을 '호담국(호랑이 이야기의 나라)'이라 불렀다. 호랑이가 등장하는 우리나라 전설이나 민담은 600여 종이 넘는다. 우리 이야기에 등장하는 호랑이는 은혜를 입으면 보답할 줄 알고 사리에 밝다. 가끔 용맹함만 믿고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기도 하지만 이 또한 밉다기보다 친근하다.

 호랑이는 옛 그림의 단골 소재이기도 했다. 호랑이는 선사시대 사람들이 남긴 울주 반구대 암각화에 처음 등장한 이래, 고구려 고분벽화의 수렵도, 각종 민화, 사찰 산신각 등에서 자주 그 모습을 드러냈다. 표정도 다양했다. 익살스러운 듯하면서 엄해 보이고, 멍청한가 싶으면서도 신령스러웠다. 민속신앙에서 호랑이는 산신령과 같은 종교적인 존재로서 숭배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호랑이는 인간을 잡아먹는 맹수였다. 그 공포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호환 마마'란 말에서 짐작할 수 있다. 호환은 호랑이에게 물려가는 것을, 마마는 천연두에 감염되는 것을 뜻한다. 호랑이에게 물려 죽거나 피해를 입는 일은 누구나 시시때때로 겪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말이 씨가 되어 호랑이가 나타날 것을 염려해 산에서는 '호랑이'란 말조차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는 속담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1392년 태조 즉위 때부터 1863년 철종 때까지 기록된 조선왕조실록을 살펴보면 호랑이가 등장하는 대목이 940여 군데에 이른다. 그 중 한 대목을 살피면 태종 때 충청, 경상, 전라 지역으로 파견을 갔던 한 관리가 조정에 호랑이 패해를 보고하는 내용이 나온다.

 

 "경상도에 호랑이가 많아, 지난해 겨울부터 금년 봄에 이르기까지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사람이 거의 백 명입니다. 연해 지역은 피해가 커서 사람들이 길을 잘 갈 수 없사온데, 하물며 밭을 갈고 김을 맬 수 있겠습니다?"

-태종실록 1402년(태종2년) 5월 3일

 

 중국 사신들도 조선에 들어와 밤길을 가야 할 때면 횃불을 든 사람 이외에 조총으로 무장한 군대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심지어 영조 때에는 호랑이가 궁궐에 세 번이나 출몰했다. 몸길이 3미터에 무게 250킬로그램 이상 되는 거대한 동물의 습격에 왕도 백성도 모두 공포에 떨었다. 조정은 호랑이 퇴치에 온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 한민족의 문학적 상상력의 원천, 호랑이

 
오늘날 동물원에서 볼 수 있는 호랑이는 한반도의 토종 호랑이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 땅에서는 어느 누구도 '왜, 어떻게 이 땅에서 호랑이가 자취를 감췄을까?'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의문을 갖고 이에 대한 답을 추적 해나선 사람은 일본인 동물작가 엔도 키미오다. 그는 "호랑이 멸종 뒤편에 일제의 무서운 폭력과 무자비함이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일본인으로서 진심으로 사죄를 하고 싶었다"면서 한국 호랑이 멸종의 역사를 추적하게 된 동기를 설명했다. 그는 서울대학교 도서관과 남산 국립도서관의 옛 자료를 뒤져 어떤 한국인도 하지 못한 '한국 호랑이 멸종사'를 정리해낸다. 그 결과, 1986년 한국 호랑이는 왜 사라졌는가?라는 한 권의 책을 펴낸다. 이 책에는 1908년 전남 영광 불갑산에서 잡혀 현재 우리나라의 유일한 박제로 남아 있는 한국 호랑이와 1921년 경주 대덕산에서 마지막으로 잡힌 호랑이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제는 밤길 가는 나그네의 심장을 오그라들게 하던 호랑이도, 떡하나 주면 안 잡아먹겠다던 호랑이도, 효자를 등에 태우고 헤엄쳐 강을 건너가던 호랑이도 모두 자취를 감췄다. 다행스러운 것은 백두대간을 포효하던 한국 호랑이의 맥이 아예 끊기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북한에는 아직 호랑이가 살고 있다고 한다. 호랑이를 '조선범'이라고 부르는 북한에서는 백두산조선범, 자강도와갈봉조선범, 강원도 추애산조선범 등 3개 지역의 호랑이를 천연기념물로 보호하고 있다.

 호랑이의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는 여전히 호랑이와 함께 살고 있다. 멀게는 단군신화부터 가깝게는 1988년에 개최된 서울 올림픽의 마스코트 호돌이까지, 호랑이는 한국과 한국인을 상징하는 영물이었다. 시인 고은은 우리 민족의 긴 역사를 보여주는 동물로 호랑이를 꼽으며 시 호랑이 등을 짓기도 했다. 호랑이가 없었다면 우리의 옛이야기와 민화는 얼마나 초라했을까? 호랑이는 우리 민족의 문학적 상상력의 원천이었다.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다."

- 중용 23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