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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에 빠지다/책에 빠지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안_디즈니도 자유 의지를 잃었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안_더 나은 오늘은 어떻게 가능한가

 

 

18. 공상과학소설

 

■ 미래는 영화에서 보는 것과 다르다

 

 인간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다른 어떤 동물보다 협력을 잘할 수 있기 때문이고, 협력을 그토록 잘할 수 있는 비결은 허구를 믿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시인과 화가, 극작가는 최소한 군인과 기술자만큼이나 중요하다. 사람들이 전쟁을 하고 대성당을 짓는 것도 신을 믿기 때문이고, 신을 믿는 것은 신에 관한 시를 읽어왔고, 신을 그린 그림을 보아왔고, 신에 관한 연극 공연에 매료돼왔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근대 자본주의 신화에 관한 우리의 믿음도 할리우드와 팝 산업의 예술적인 창조물에 의해 뒷받침된다. 우리가 물건을 더 많이 사면 행복해질 거라고 믿는 것도, 우리 눈으로 텔레비전에서 자본주의의 낙원을 봤기 때문이다.

 

 

■ 상자 안에서 살기

 

 공상과학 소설이 더욱 심오한 통찰력을 발휘해서 탐구해온 주제는 따로 있다. 바로 기술이 인간을 조종하고 통제하는데 사용될 위험에 관한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는 거의 모든 인간이 사이버 공간에 갇혀서 생활하는 세계를 그린다. 그 속에서 사람들이 경험하는 것은 모두 마스터 알고리즘에 의해 만들어진다. 영화 트루먼쇼는 자신도 몰게 리얼리티 티브이 쇼의 스타가 된 한 개인에게 초점을 맞춘 영화다. 사실은 자신만 모르고 있을 뿐, 그의 어머니와 아내, 가장 친한 친구들까지 모두가 연기자다. 그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잘 짜인 대본에 따른 것이다. 그가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은 몰래카메라에 저장되고, 수백만 팬들이 그것을 열심히 지켜본다.

 

 사람들은 상자 안에 갇히는 것을 두려워하면서 정작 세상의 모든 경이로움은 놓치고 만다. 네오가 매트릭스 안에 갇혀 있는 한, 그리고 트루먼이 티브이 스튜디오 안에 묶여 있는 한, 그들은 피지 섬도, 파리도, 마추픽추도 갈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우리가 인생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은 우리 자신의 몸과 마음 안에 있다. 매트리스 밖으로 탈출하든, 피지 섬으로 여행을 가득 그 점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을 것이다. 당신 마음속 어딘가에 피지 섬에서만 개봉할 것이라는 커다란 붉은색 경고문이 적힌 강철 상자가 있어, 남태평양으로 여행을 가서 그 상자를 열었을 때에야 비로소 피지 섬에서만 누릴 수 있는 온갖 특별한 감정과 느낌이 발산되는 것이 아니다. 피지 섬에 가보지 못하면 이런 특별한 감정과 느낌이 발산되는 것이 아니다. 피지 섬에 가보지 못하면 이런 특별한 느낌을 영원히 누리지 못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피지 섬에서 느낄 수 있는 무엇이든 세계 어디에서나 느낄 수 있다. 심지어 매트릭스 안에서도 가능하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매트릭스 스타일의 거대한 컴퓨터 시뮬레이션 속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우리가 믿는 모든 민족적, 종교적, 이데올로기적 이야기와 상충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의 정신적 체험은 실재하는 것이다. 만약 인류의 역사가 지르콘 행성에서 온 쥐 과학자들에 의해 슈퍼컴퓨터로 운영되는 정교한 시뮬레이션으로 밝혀지면 카를 말크스와 IS로서는 꽤 당혹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이 쥐 과학자들도 아르메니아 집단 학살과 아우슈비츠 문제에는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지르콘 대학의 윤리위원회를 통과할 수 있었단 말인가? 비록 가스실이 실리콘 칩 안의 전기 신호에 불과했다 해도, 그때 희생자들이 체험한 고통과 공포, 좌절감의 극심함은 조금도 덜하지 않을 것이다.

 

 

■ 디즈니도 자유 의지를 잃었다

 

 2015년 픽사 스튜디오와 워르 디즈니 픽처스는 인간 조건에 관한 모험담을 그린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을 선보였다. 종전 작품들보다 훨씬 현실적이면서도 고민하게 하는 작품이었고, 곧바로 아이와 어름이 다 좋아하는 블록버스터가 되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인 11세 소녀 라일리 앤더슨은 미네소타에 살다가 부모를 따라 샌프란시스코로 이사를 간다. 하지만 친구들과 고향을 그리워하며 새로운 삶에 적응하는 데 힘들어하다가 결국 집을 나와 미네소타로 돌아가려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라일리 자신은 모르게 또 한 편의 훨씬 거대한 드라마가 진행되고 있다. 라일리는 자신도 모르는 티브이 리얼리티 쇼의 스타도 아니고, 매트릭스 안에 갇혀 있지도 않다. 바로 그녀 자신이 매트릭스이고, 그녀 내부에 뭔가가 갇혀 있다.

 

 디즈니는 그전까지는 한 가지 신화를 반복해서 들려주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제국을 건설해왔다. 무수히 많은 디즈니 영화에서 영웅들은 어려움과 위험에 직면하지만 결국에는 진정한 자신을 찾고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을 따름으로써 승리한다. 하지만 인사이드아웃은 이런 신화를 무참히 해체한다. 인간에 관한 최신 신경생물학적 관점에서 라일리의 뇌 속을 탐험하는 여정으로 관객을 이끄는데, 라일리에게는 진정한 자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자유로운 선택을 하는 것도 아님을 알게 된다. 라일리는 사실상 서로 갈등하는 생화학적 기제의 합산으로 운영되는 대형 로봇이다. 영화에서는 생화학적 기제를 귀여운 만화 주인공으로 인격화한다. 노란색의 명랑한 기쁨이, 푸른색의 시무룩한 슬픔이, 붉은색의 다혈질 버럭이, 기타 등등. 주인공들은 본부 안에서 대형 티브이 화면으로 라일리의 모든 움직임을 지켜보는 일련의 버튼과 레버를 조작해 라일리의 모든 기분과 결정과 행동을 통제한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디즈니가 그토록 급진적인 메시지를 담은 영화를 대담하게 시장에 선보였을뿐더러, 그런 영화가 전 세계에서 히트하기까지 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인사이드 아웃이 그처럼 크게 성공한 것은 해피 엔딩의 코미디물이었던 데다, 관객 대다수는 영화에 담긴 신경학적 의미와 그 밑에 깔린 섬뜩한 메시지를 간과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