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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에 빠지다/책에 빠지다

뇌이야기_믿기 어렵겠지만, 사실 술은 때로는 우리의 기억을 돕는다

 

'뇌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웃기는 신경과학자 딘 버넷이 들려주는 뇌과학 코메디

 

■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 술은 때로는 우리의 기억을 돕는다
- 알코올과 기억 체계의 상관관계

 

 사람들은 술을 좋아한다. 너무 좋아한 나머지 많은 사람들이 술로 인한 문제로 끊임없이 시달리고 있다. 술이 아주 일상적인 문제인 만큼, 이를 해결하는 데도 수십억을 퍼붓고 있는 실정이다. 대체 술은 그토록 말썽을 일으키면서도 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을까? 
 아마도 알코올이 우리를 즐겁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술은 뇌에서 성취감이나 만족 등을 담당하는 도파민을 분비시켜 술꾼들이 특히나 좋아하는 묘한 행복감을 자극하여 들뜨게 만든다. 하지만 여기에는 술에 대한 사회적인 관습도 한몫한다. 축제나 친목을 다질 때, 아니면 단순한 오락 목적에서라도 술은 꼭 등장한다. 이 때문에 술의 심각한 문제가 쉽게 간과된다. 물론 주사는 나쁘다. 하지만 친구들과 서로 누가 얼마나 이상한 주사를 부렸는지 얘기하며 떠들고 웃는 것도 유대관계가 더 돈독해지는 방법 중 하나다. 또한 술이 취했을 때 사람들이 이상하게 행동하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는 심각한 문제가 되지만, 모든 학생이 다 같이 마신다면 그건 재미있는 일이 되지 않을까? 즉, 술은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심각함이나 의무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끔씩은 필요한 휴식인 셈이다. 그러니 음주로 인한 나쁜 점이 있다 해도 술 애호가들에게는 기꺼이 감수할 만한 대가처럼 느껴진다. 

 


 술의 문제 중 하나는 기억상실이다. 술과 기억상실은 꼭 그런 것만은 아니지만 동시에 일어날 때가 많다. 술 때문에 생기는 기억상실은 코미디 영화나 시트콤은 물론 개개인의 추억에서조차 빠지지 않는 단골 소재다. 예를 들면 밤새 술을 퍼마시고 다음 날 깨어보니 방 안 한가운데에 라바콘(공사장 빨간색 고깔)이 놓여 있었다거나, 호수공원에서 성난 백조들에게 둘러싸인 채 깨어났었더라는 상황 말이다. 
 그렇다면 술이 어째서 우리의 기억을 도와준다는 것일까? 이를 이해하려면 먼저 왜 술이 우리 뇌의 기억 체계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아야 한다. 우리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여러 종류의 수많은 화학물질과 또 다양한 물질을 섭취하게 된다. 그런데 왜 이 때는 혀가 꼬이거나 괜히 가로등에 난데없이 시비를 걸거나 하지 않는 것일까? 
 이것은 술의 화학적 특성 때문이다. 우리 몸과 뇌는 잠재적으로 유해한 물질이 몸의 내부 시스템에 들어오지 않도록 차단시키는 여러 단계의 방어체계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알코올은 물에 녹으며 입자가 매우 작아서 혈류를 통해 우리 몸 내부의 시스템 전체로 퍼져버린다. 또한 뇌-혈관 관문도 통과해 뇌에도 직접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렇게 술이 뇌 속에 쌓이면 몇 박스에 달하는 스패너가 아주 중요한 일을 시작한다. 
 알코올은 저하제다. 저하제라는 것은 알코올로 인해 그다음 날 아침 기분이 나빠지거나 우울해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알코올이 뇌신경의 활동을 저하시킨다는 뜻이다. 마치 라디오 볼륨을 낮추는 것처럼 뇌의 신경 활동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알코올을 마시면 사람들은 더 흥분하여 이상하게 행동하게 될까? 알코올이 뇌 활동을 저하시킨다면 술에 취한 사람들은 조용히 앉아서 침이나 흘려야 하는 거 아닌가? 
 맞다. 어떤 사람들의 경우에는 정확히 그렇다. 하지만 인간의 뇌는 깨어 있는 매 순간마다 수많은 일을 처리하며, 이를 위해서는 어떤 일이 발생하도록 만들어야 할 뿐만 아니라 어떤 일은 발생하지 않도록 차단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뇌는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대부분 제어한다. 하지만 우리가 한 번에 모든 일을 할 수는 없으므로 뇌의 상당 부분은 특정 영역이 활동하지 않도록 억제하거나 정지시키는 일을 한다. 대도시에서 교통을 통제하는 방법을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쉽다. 아주 복잡한 일이긴 하지만, 교통 통제는 일정 부분 정지 신호와 빨간 불을 기준으로 이루어진다. 이 두 신호가 없으면 도시는 몇 분 안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릴 것이다 마찬가지로 뇌 속에는 중요한 기능을 필요한 경우에만 수행하는 수많은 영역이 있다. 한 예로 뇌에서 우리 다리를 움직이는 영역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회의 중이라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한다면, 뇌의 다른 영역이 다리를 움직이는 영역에게 '지금은 때가 아니야'라고 말하게 된다. 
 그러나 알코올이 작용하게 되면 경솔함이나 흥분, 분노를 제어하는 영역의 빨간불이 희미해지거나 꺼져버린다. 게다가 말을 분명하게 하거나 걸음을 조절하는 영역의 전원도 차단된다. 우리 몸에서 심장박동을 조절하는 것과 같은 좀 더 단순하고 근본적인 체내 시스템은 방어가 잘 되어 있고 견고하지만, 반면에 새롭고 섬세한 프로세스들은 알코올에 의해 쉽게 방해를 받거나 손상을 입는다. 현대 기술 분야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1980년대에 출시되었던 워크맨은 계단에서 떨어뜨리는 정도로는 큰 고장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최신 스마트폰은 테이블 모서리에 대고 툭툭 쳤다간 엄청난 수리비용을 내야 할지도 모른다. 이를 보면 섬세함의 다른 이름은 취약함 일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기억 형성이 완전히 차단될 만큼 술을 마신다는 것은 너무 취해서 말도 할 수 없으며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는 상태를 뜻한다. 하지만 알코올 중독은 이와는 다르다. 알코올중독은 너무 오랫동안 술을 마신 나머지 몸과 뇌가 이미 알코올을 처리하는 데 적응되어 있다. 심지어 이들은 대체로 일반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양보다 훨씬 많은양의 알코올을 섭취해야만 몸을 똑바로 세우거나 말을 제대로 할 수 있다. 
하지만 알코올중독 상태라도 알코올은 여전히 기억 체계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요동이 심하게 일어나면 기억 생성이 완전히 차단되기도 한다. 물론 내성 덕분에 이때에도 이들은 똑바로 말하고 행동한다. 즉, 이들은 겉으로는 전혀 이상한 증상을 보이지 않지만 10분이 지나면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떤 행동을 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다. 이처럼 알코올은 기억 체계를 혼란시킨다. 하지만 아주 특정한 환경에서는 실제로 기억을 도와주기도 한다. 이를 상황에 따른 회상이라고 부른다. 기억을 습득한 환경과 동일한 환경에 있으면, 그 기억을 불러내기가 더 쉬워진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여기서 더 흥미로운 사실은 이 원리가 외부 환경뿐만 아니라 내부 상태에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점이다. 이를 상태 의존적인 회상이라고 부른다. 간단히 말하면 알코올이나 흥분제같이 뇌 활동을 변화시키는 물질은 특정 신경 상태를 일으킨다. 뇌는 훼방을 놓는 이런 물질들을 처리할 때 이를 인식한다 마치 방이 갑자기 연기로 가득 차면 쉽게 알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